서울에서 화장하고, 남도의 선영까지 하루에
백 세를 넘겨 사신 어머님이었습니다. 자택에서 밤늦게 조용히 숨을 고르셨고, 다음 날 오전에 빈소를 마련했습니다. 자녀와 손주까지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. 슬픔은 분명 있었지만 서두르거나 흔들리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.
이 장례에서 가장 먼저 정리해야 했던 것은 동선이었습니다.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남도의 선영까지 이동해야 했습니다. 상주께서 가장 걱정하신 것도 그것이었습니다. 화장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, 하루 안에 이동과 안장을 마칠 수 있을지, 먼 곳에서 조문을 받는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.
이 부분은 제가 판단해서 전체 일정을 그렸습니다. 화장장 예약 시각, 이동 거리, 차량 구성을 하나씩 맞춰 하루에 마무리되는 흐름으로 정리했습니다. "시간은 제가 책임지고 맞추겠습니다." 그 말에 상주 표정이 조금 편해지셨던 기억이 납니다.
염습과 입관은 둘째 날에 했습니다. 화장은 과하지 않게, 생전의 인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했고 관 안에는 꽃을 넉넉히 준비했습니다. 자녀분들이 한 송이씩 직접 올려드리며 오래 머무셨습니다.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.
"어머니, 너무 예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."— 가족들께서, 입관 자리에서
발인은 새벽이었습니다. 모두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일정은 계획대로 흘렀습니다. 화장을 마치고 곧바로 이동해 큰 지연 없이 선영에 도착했습니다. 안장은 간소했지만 정갈했고, 조문을 받는 방식도 미리 말씀드린 그대로 진행됐습니다.
장례는 절차입니다. 그런데 그 절차가 누군가에게는 기억으로 남습니다.
